좋은 부모 되기


  영유아기는 인간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영유아기 경험은 평생을 좌우하며, 0-3세의 잘못된 양육은 ‘치명적’ 이라는 여러 학자들의 주장은 삶의 초기 발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발달의 결정적 시기인 영유아기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많은 학자들은 감각 자극과 경험을 논하곤 합니다.
  영유아기는 눈과 코, 입과 귀 등 모양만 갖고 태어나 다양한 감각 경험들을 통해 성숙시켜 나가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요?


  한여름 더위를 견뎌주는 콩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콩을 만지고, 삶고, 냄새를 맡고, 또 반죽을 주무르고, 완성이 될 때까지 기다림이 필요했던 예전과 달리 전화 한 통이나 배달앱 손가락 클릭 두어 번으로 콩국수가 배달되는 환경은 우리 아이들에게 오감을 자극할만한 시간과 경험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돌멩이 하나로 다양한 놀이를 개발하며 몇 년을 놀이했던 과거와 달리 놀잇감의 이름과 방법을 채 알기도 전에 새로운 놀잇감을 내어주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기르는 일이 우리가 어린아이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고단해지고 힘들어졌습니다. 이는 간섭적 양육이 많아졌기 때문이고, 스스로 무엇인가를 경험하기 위해 결정할 만한 시간과 자극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과도한 자극 환경에 과잉 통제된 환경까지 곁들여져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어린이집 버스를 타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길거리에 나서면 신호등과 횡단보도, 자동차의 통제, 어린이집, 학원 등 보이지 않는 연속적인 통제와 간섭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오죽하면 놀이할 시간마저 짬을 내 만들어야 하고, 놀잇감이나 놀이 주제 역시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제공된 환경 속에서 제공된 방법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씁쓸합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떠한 부모역할을 해야 할까요? 세상의 그 어떤 부모도 하루를 시작하며 ‘내가 오늘 너의 하루를 제대로 망쳐주겠어’로 마음먹고 시작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행복하게 해 줄까?’, ‘오늘은 화내지 않고 꼭 배운 대로, 알고 있는 대로 하리라’ 수없이 다짐하며 시작하지만, 이러한 다짐은 고작 30분 만에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수많은 양육서와 블로그, 카페를 섭렵하고, 다양한 부모교육을 종류별로 들으며 좋은 부모가 되고자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닌가 봐’하며 자책하기도 합니다.


  부모 스스로가 어떻게 해야 좋은 부모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고작 30분 만에 무너지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의 입장이 아닌,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를 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무엇이든 해주기 위해,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기 위해 애쓰는 부모보다는 아이가 무언가에 관심과 흥미를 보일 때, 어떻게 놀아주고 반응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양육과정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주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내 아이가 소중하기 때문에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며 간섭하는 것이 사랑하는 아이를 위한 부모의 역할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중한 내 아이에게 입힐 스웨터를 완성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나와의 놀이를 원하는 아이와 눈을 마주 보는 일이 우선입니다. 밀린 설거지를 하다가도 ‘엄마’를 부를 때 고무장갑을 벗을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때마다 알맞은 시선과 손길을 주는 것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를 키우는 전략입니다. 목마른 말을 물가로 이끌 수는 있으나, 물을 마시게 할 수 없듯이, 좋은 부모 되기는 우리 아이가 언제 목이 마를지, 언제 물이 필요한 지 항상 관찰하고 기다리는 가운데 그 시점을 알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이를 따뜻하게 지켜봐 주세요.